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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

장사상륙작전 <성동격서 그리고 학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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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지식을 탐구하고싶은 K입니다

 

오늘은 장사상륙작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은 인민군에 인해 낙동강 전선까지 몰리게 되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맥아더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하였고 <성동격서의 대표적인 공격유형인 장사상륙작전>을 병행하기로 합니다.  

 

*성동격서란?

동쪽에서 소리내고 서쪽을 공격하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서해안 인천의 정반대편이 였던 동해안 포항 북쪽 경북 영덕 장사리에서 장사상륙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772명의 학도병을 구성되었으나 대부분 정규적인 군사교육도 받지 않고 군번도 없던 어린 소년들이였습니다.  전쟁이 매우 긴박했으며 국군의 다른 부대상황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군 상부에서는 매력적이었던 이 작전을 강제로 진행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전의 출정식은 이상하리만큼 성대했습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고위 장교들이 다수 참석하였고 시민들의 환송이 이어졌죠. 전형적으로 북한군에게 눈속임을 하려는 역정보 성동격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실상은 군수물자 , 식량, 훈련량 모든게 부족했는데 말이죠.  

 

마침내 9월15일 새벽 다섯시 경, 학도병들은 문산호에 탑승하여 장사해안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짙었고 파도가 매우 높아 문산호가 접안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북한군의 공격과 높은 파도 탓에 좌초되버리고 말았죠.  어쩔수 없이 선발특공대가 모래사장에 4개의 밧줄을 잇는데 성공하고, 배에서 뛰어내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작전초기 학도병들의 피해는 컸으나, 정신력으로 무장하였기에 북한군 270명을 사상, 방어시설 11개소 파괴, 교량 2개소와 도로 6개소를 파괴하는 커다란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효과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북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데 완벽히 성공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마침내 9월 16일 철수를 위한 조치원호가 도착했습니다. 미 해군의 지원사격아래 철수가 시작되었으나 북한군의 공격도 거세졌습니다. 조치원호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모든 학도병들을 승선시킬수 없었습니다. 결국 640명만이 승선하게 되었고 최후까지 해안가에 남아 북한군과 맞서싸우던 39명의 후방수비대는 결국 배에 승선하지 못한채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성동격서, 학도병들의 처절한 작전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 1997년에서야 본격적으로 문산호 인양작업이 착수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되었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에서도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졌던 장사상륙작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이상 K였습니다. 

 

장사상륙작전과 , 인천상륙작전의 전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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