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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보]

유적으로 확인된 중국 최초의 여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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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전설속의 나라로 취급되었던 중국의 상나라(은나라)

 
그러나 상나라의 수도인 은허가 발굴되면서 상나라는 실존하였던 나라로 확인되었다.
 

(복원된 상나라 궁전)
 
은허에서는 상나라가 제사 때 점을 치는 용도로 사용했던 수많은 갑골문이 발견되었다
 
은허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지 않은 한 여성과 관련된 갑골문이 수백점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상나라 22대왕인 무정(재위기간 기원전 1250년~1192년)의 배우자 중 한명이었던 부호(婦好)였다.
 
갑골문의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최소 3,000명을 지휘하였던 장군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세운 부호 석상)
 
그녀와 관련된 전쟁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번에 왕이 부호에게 명을 내려 토방을 정벌하려고 하는데 신의 보호가 있을까요?(今或王登人 乎婦好伐土方 受有又)”
 
“부호가 지알(상나라 장군 이름)과 연합해서 파방을 치게 하고, 대왕은 친히 동쪽으로 파방에 진격하면 적군은 부호의 매복지로 쳐들어올까요?(婦好其比沚알 伐巴方 王自東探伐戎 陷于婦好立)”
 
“부호에게 군사 3000명을 징집하게 하고, 또 1만명을 징집하여 강방을 정벌하라고 할까요?(登婦好三千 登旅萬 呼伐羌)”
 
이러한 갑골문 기록을 볼 때 그녀는 군대를 지휘하며 각지의 오랑캐(토방, 파방, 강방)를 정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갑골문에서는 그녀의 출산, 사산에 대해 점을 치는 내용도 다수 발굴되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내용도 갑골문을 통해 확인된다.
 
“부호가 감기(혹은 신경통)에 걸릴까요?(好骨凡有疾)” “부호의 질병에 재앙이 있을까요?(婦好又疾추有)”
“부호가 죽을까요?(好其死)” “부호가 병으로 죽지않겠지요?(好病不死)
 
무정왕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는 사망하고 왕은 제사를 치룬 뒤 그녀를 종묘에 묻었다.
 
그녀가 특히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76년 은허의 종묘 터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무덤인 부호의 묘가 발견되면서였다.
 


(부호묘와 출토된 유물)
 
그녀의 무덤에서는 수백점의 유물과 순장된 인골 16구와 6마리의 개뼈가 발굴되었다.
 
그녀의 장군으로서의 위용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나 무덤에서는 8kg의 청동도끼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중국정부가 만든 부호 석상을 보면 이 유물을 반영해서 인지 도끼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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