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위: 셀린 디옹- My Heart Will Go On (1997, 1800만 장)
2009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였던 동시에 현재까지 전 세계 박스오피스 올타임 3위에 알박기하고 있는 전설적인 영화 타이타닉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을 함께한 명곡 My Heart Will Go On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모두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히도 노래 역시 영화와 함께 전 세계적인 히트를 거두었고, ost 앨범은 대략 3000만 장이 팔렸다고 추측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오케스트라 사운드트랙으로 꼽힌다. 노래는 역시나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명곡에 걸맞는 아름다운 커버도 듣고 가면 좋다.
9위: 바카라(Baccara)- Yes sir, I Can Boogie (1977, 1800만 장)
한국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는데 중장년층 한정인가 봄... 본인은 이 글 쓰면서 이 노래를 처음 들어봄.
8위: 잉크 스팟(The Ink Spot)- If I Didn't Care (1939, 1900만 장)
틀딱노래 나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까지 틀딱인 노래가 나올 줄은 몰랐음
2차 세계대전 막 발발할 시절에 나온 너무 개씹고전이라 유튜브에 있는 공식 음원들조차 음질이 개씹창임
보컬 재즈를 주력으로 한 흐긴 4인조 그룹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다가 리더가 공연하다 추락사하자 지들끼리 싸우다 깨졌다 함
폴아웃 3에 삽입된 I Don't Want To Set The World On Fire와 Java Jive 정도가 한궈런들에게 익숙할 듯
7위: USA for Africa- We Are The World (1985, 2000만 장)
노래도 유명하지만 짤방도 유명한 노래가 나왔다
갓갓 마잭느님께서 한 소절 빼고 싹 다 작사작곡한 노래
1984년 가뭄으로 인한 에티오피아 대기근을 돕기 위해 이루어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이는 곧 전 세계적인 광풍을 몰고 왔고, 2014년 영국문화원 선정 지난 80년간 가장 위대한 사건 50위에 선정되었으며
밴드 에이드란 이름으로 발표된 자선 음반 Do They Know It's Christmas? 는 1170만 장이 팔리는 쾌거를 이루었다(역대 싱글 판매 순위에서는 24위).
이를 본 마잭
쉬익쉬익,,, 미국도 이런거쯤은 할 수 있다구,,,, 아니 더한 걸 보여주지,,,,
이렇게 양키놈들의 매운맛을 보여주기로 다짐한 마잭성님은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티나 터너, 사이먼 앤 가펑클, 브루스 스프링스턴, 밥 딜런, 스티브 페리(밴드 journey의 보컬), 라이오넬 리치, 빌리 조엘 등 당시 내로라하던 이들을 모두 불러모아 다 같이 We Are The World를 불렀다.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이 한 데 모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또한 이 노래는 아프리카에 대한 전례 없는 관심을 불러모았으며, 음악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동떨어진 음악가들이 함께할 수 있음을 보였는데, 이는 후반부의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스티비 원더의 듀엣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흑과 백, 락과 알앤비,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한 데 뭉쳐 조화를 이루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이는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듀엣곡 Ebony and Ivory에서도 구현된 바 있음).
2010년 발매 25주년을 기해 2010년 아이티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차례 호화 가수들이 모여 We are the world를 재녹음한 바 있는데, 과도한 오토튠 사용과 틴팝스러운 가벼운 편곡으로 인해 원곡에 비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이는 우리나라의 하나되어도 마찬가지).
6위: 엘비스 프레슬리- It's Now or Never (1960, 2000만 장)
엘비스 프레슬리 곡이 한 개쯤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엘비스 하면 바로 떠오르는 Hound Dog이나 Heartbreak Hotel, 그것도 아니면 틀딱들 질질 짜게 만드는 Love Me Tender 같은 발라드가 나올 줄 알았는데 뭔 오 솔레미오 번안한 게 순위에 올라와 있다.
당시 엘비스가 무대에서 보여줬던 반항적인 퍼포먼스와 상반된 바른 청년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매니저 파커 대령의 조언을 따라 당시 인기 절정의 시기에 있던 엘비스는 1958년 미 육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했지만, 입대한 후에도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라 입대 전 녹음돼 입대 이후 발매된 노래가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덕분에 제대 후에도 쉽게 최고의 엔터테이너의 자리에 복귀할 수 있게 된 그는 군 복무로 인해 책임감 있는 스타라는 이미지까지 얻게 되어 한때 안티였던 이들도 팬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였다.
엘비스의 군 복무 당시 미국 음악씬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엘비스의 기반이었던 로큰롤 씬은 버디 홀리, 에디 코크런 등 스타들의 사망, 부상, 은퇴 등이 잇다라 벌어지며 초상집 분위기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이러한 로큰롤 1세대들의 침체로 인해 50년대의 시끄러웠던 대중음악 씬도 차츰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때문에 카퍼 대령은 제대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체적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는데, 엘비스는 입대 전부터 반항적인 로큰롤뿐 아니라 기성 세대들의 취향을 반영한 Love me tender 같은 발라드를 자주 부른 바가 있었기에 이를 무리 없이 따랐다. Now and then 역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곡 중 하나였다.
이러한 엘비스의 변화를 두고, 한때 세상을 뒤바꿨던 음악계의 혁명가이자 자신의 우상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타성에 젖어 시대의 흐름에 안주한 변절자가 되어 버렸다고 느낀 존 레논은 "엘비스는 군대 이후 죽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이는 공교롭게도 마크 채프먼이 존 레논을 살해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빌보드 5주 1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연말차트서 7위밖에 못한 거 보면 그렇게까지 대단한 히트곡은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Heartbreak Hotel을 제끼고 2000만 장이 팔린 건지 모르겠다(2위인 Hound Dog은 한참 밑에 있음).
5위: 휘트니 휴스턴- I Will Always Love You (1992, 2000만 장)
역시나 이게 안 나올 수 없다.
음악을 전혀 안 들어본 사람도 코러스 (둥)앤 다~~~~이야~~~~ 이 부분은 ㄹㅇ 모를 수가 없는 노래.
휘트니 휴스턴 본인이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 보디가드의 ost이며, 영화의 평가는 그저 그랬지만 흥행이 역대급으로 터지다 보니(그리고 노래가 역대급이다 보니)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빌보드 14주 1위를 기록하는 등 희대의 대히트를 치게 된다.
아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사실 이 노래는 원곡이 있었다.
이랬던 틀내나는 컨트리 송이 편곡을 거치며 쌔끈한 알앤비로 탈바꿈한 것이다.
도입부가 무반주였던 것도 처음엔 반주 넣으려 했는데 보디가드 남주였던 케빈 코스트너가 반주 빼는 게 어떻냐 해서 뺐더니 더 좋아진 것이라고...
4위: 빌 헤일리&히스 코메츠(Bill Hale&His Comets)- Rock Around The Clock (1954, 2500만 장)
역사상 최초의 로커가 누구냐고 물으면 리틀 리처드, 척 베리와 함께 손꼽히는 로큰롤의 아버지, 빌 헤일리.
아니 님 54년도에 냈다가 말아먹었던 Rock Around The Clock 기억함??
그 노래가 얼마 전 영화 폭력교실에 삽입되고 나서 지금 ㅈㄴ 인기 폭발인디??
아저씨 특: 말끝에 ㅋ 한 개 붙이면 꼽주는 건지 모름
히잉...
3위: 몽고 제리-In The Summer Time (1970, 3000만 장)
이 노래 잘 아는 펨붕이 있으면 쪽지좀 (노래도 그룹도 한국에서는 씹듣보인지 한국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게 거의 없음)
분명 3000만 장이나 팔렸으면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1970년대 초 잠깐 세계를 먹었다는 몽고 제리라는 영국 밴드의 대표곡임
잠깐 동안이지만 그 인기가 엄청나서 '몽고마니아'라는 비틀마니아를 잇는 신조어까지 나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3위를 했지만 그 외 거의 모든 나라에서 1위를 차지, 호주에서는 커버 버전이 원곡을 제치고 1위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양놈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지 이 이상 특별한 정보는 잘 안 나온다. 디스코그래피 보니까 활동은 최근까지 꾸준히 하고 계시는듯)
2위: 엘튼 존- Candle in the Wind 1997 (1997, 3300만 장)
우리나라에서는 중장년층에게나 조금 유명하고 그나마도 Goodbye Yellow Brick Road 같은 몇 잔잔한 히트곡 위주로나마 알려져 있는 엘튼 존이지만
(39초 혁오-톰보이)
실제 엘튼 존은 70년대 빌보드 1위를 제일 많이 한 가수, 역대 음반판매 4위에 오른 '팝 락'의 아버지이자
엘비스, 비틀즈 이후 시대, 즉 7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첫 손가락으로 손꼽히는 올타임 레전설이다
이를 입증하듯 스포티파이 조회수, 시청자수도 '그' 마잭, 비틀즈, 퀸을 모두 압살하며
코시국에 여러 동료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앨범은 스포티파이 10억 스트리밍을 달성하는 등 현대에 와서도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함
대표곡 로켓맨, 이는 곧 엘튼 존의 별명이 되어 그의 전기 영화 제목으로까지 쓰였는데
퀸 노래 빼면 별로 좋은 소리 못 듣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달리 영화 자체의 평가도 꽤 높은 편(물론 한국서는 망함)
그러나 이런 인기에도 불구 그의 최전성기는 위의 비틀즈, 엘비스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었는데, 그의 빌보드 1위 기록 역시 75년을 이후로 한동안 끊기게 된다. 이는 그의 데뷔가 1970년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많이 짧은 기간이었다(비틀즈도 8년은 활동했음).
그러던 1997년..
(다이애나 비의 자동차 사고 현장)
엘튼 존의 절친이었던 다이애나 비 왕세자비가 사고로 사망하자, 전 세계는 슬픔에 잠겼고 엘튼 존은 그녀에게 걸맞는 추모곡을 내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침 그에겐 비슷한 내용의 가사를 가진 'Candle In The Wind'라는 1973년 곡이 있었는데, 이 곡은 원래 마릴린 먼로를 추모하는 곡이었다(첫 가사에 나오는 이름 '노마 진'은 마릴린 먼로의 본명). 이미 당시 라디오에서는 이 노래를 다이애나 비의 추모곡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나 엘튼 존은 개인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추모하는 곡을 부르고 싶었고, 이 뜻을 받들은 작사가 버니 토핀 덕분에 원곡을 개사한 곡을 발표할 수 있게 된 엘튼 존은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장에서 개사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것이 이 노래의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 영상이다(원곡은 간간히 불러줌).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이 팔려나갔으며, 빌보드 14주 1위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절친이었던 존 레논이 암살당했을 때 발표한 추모곡 Empty Garden도 띵곡임)
1위: 빙 크로스비-White Christmas(1942, 5000만 장)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곡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캐롤송이었음
그러나 머라이어 캐리는 아니었다(올아원포 크리스마스는 1600만 장을 팔아 올타임 11위에 랭크됨)
위의 엘튼 존이 70년대의 상징이라면
이 노래를 부른 빙 크로스비는 3, 4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이뜸
그는 뛰어난 백인 재즈 싱어이자 스탠다드 팝의 거두로서 팝의 시대를 개막하며 사상 최초로 대중음악을 메인스트림에 올려놓았으며(그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중음악 감상이 흔한 일이 되기 힘들어졌을 것), 동시에 영화배우, 코미디언으로서도 성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말 그대로 20세기 초중반 대중문화계를 혼자서 다 해 처먹었다. 1948년에는 아예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되기도...
나는 시발년들아
이 노래의 경우 '홀리데이 인'이란 영화에 사용되었으며, 당시 그의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역대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무려 3년에 걸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현재까지 넘사벽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빙 크로스비의 스타일은 비교적 후대 가수(&배우)인 프랭크 시나트라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는데(원래 프랭크 시나트라는 아이돌에 가까웠으나 군 복무 논란으로 한 차례 나락간 후 빙 크로스비의 스타일을 참고하여 재기에 성공함), 이 때문인지 둘이 같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열창하기도 했다.
(합 ㅈㄴ 안맞네;;;)
1977년 공연 도중 무대에서 떨어져 디스크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곧바로 데이비드 보위와 합작을 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던 크로스비는 당해 10월 프로 골퍼와 골프를 치고 클럽을 나오던 중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은 "이봐, 정말 멋진 게임 아니었나?" 였다.
...
지금이야 시대가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로 바뀌어서 이런 싱글 판매 수와 스트리밍 횟수를 1대 1로 비교하면 당연 상대가 안 되지만, 그래도 그당시 인기와 시장 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볼 때 빙 크로스비의 이 기록에 비빌 만한 기록은 아직까지 없다고 봐도 무방한 듯하다.
(+)
쓰고 보니 왜 TOP10에 대중음악 GOAT이자 역사상 최고의 싱글들을 만들어낸 밴드인 비틀즈가 이름을 올리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위를 쭉 살펴보니 의외로 비틀즈가 많이 없었고 (브리티시 인베이젼을 시작한 I Want To Hold Your Hands가 1200만 장으로 21위) 오히려 쥬지 해리슨의 솔로 My Sweet Lord가 1000만 장 팔려 2위인 Hey Jude보다 높은 점은 굉장히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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